잠재의식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와 네빌 고다드의 가르침

언더본스타 202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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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비를 경험하다"


안녕하세요, Inner Guidance Channel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서는 상상력이 현실을 형성하는 곳입니다. 네빌 고다드의 희귀한 책과 강의를 통해 깊은 가르침을 다루고 있으며, 모든 콘텐츠는 이 채널에서 무료로 제공됩니다. 오늘은 그의 놀라운 강의 "그리스도의 신비를 경험하다"를 특별히 제공해드립니다. 이번에는 AI 기술을 통해 향상된 오디오 품질로 네빌 고다드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 내려온 천상의 존재이며, 그리스도의 신비를 경험하는 만큼 그 존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 신비를 경험하게 되면, 자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니며, 다시 나타날 일도 없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작은 드라마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파일롯'이라는 단어는 압축된 형태, 즉 '수축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 속 인물들은 모두 의인화되어 있으며, 그들은 특정 속성이나 성질을 나타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역사 속 인물로 보는 것은 진리를 인간 영혼의 약함에 맞춰 조절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영원한 상태입니다.

파일롯은 사실 우리처럼 인간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수축된 상태를 의미하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바로 당신 안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파일롯은 예수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의 왕이십니까?" 예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가 말하는 거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말한 거냐?"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수님이 자신이 왕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지만, 그가 묻는 질문은 "이 수축된 상태가 깨졌는가?"라는 것입니다. 이 수축된 상태가 깨질 때, 그 상태는 자아를 온전히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는 말합니다. "그래, 너는 왕이라고 말하는구나.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파일롯은 '진리가 무엇인가?'라고 묻습니다. 이 진리는 물리적인 세상에서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진리가 아니라, 우주와 달을 창조한 존재의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인류에게 이 우주를 창조한 존재가 바로 '당신'임을 전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수축된 상태로 내려온 존재라는 것을 모릅니다.

파일롯이 묻는 질문은 단순한 의문에 불과합니다. 진정으로 그 사실을 알려면, 자신이 직접 경험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경험하는 만큼,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해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교황이든, 목사이든, 평범한 사람이라든,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바닥에서 청소하고 있을지라도,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제, 시인 브라우닝의 말을 들어봅시다. 그는 "진리는 우리 안에 있다. 외부의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중심에 진리가 완전하게 존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아는 것은 외부의 빛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빛을 밝혀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파라켈수스는 요한복음에서 나온 '나는 진리다', '나는 길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세 가지의 '나는' 선언을 하나의 짧은 문장으로 통합했습니다. 그는 "우리 안에 진리가 완전하게 존재하며, 진리를 아는 것은 내면의 빛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결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신비는 오직 내면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이 작은 방에서도, 당신은 우주 안에서 중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수축된 상태는 바로 '파일럿'이며, 당신 안에서 stir(일어나다)하고 질문을 던질 때, 그것은 당신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모든 갈등은 개인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내부의 광채가 나옵니다. 그것은 깨어나고 이 작은 옷 안에서 우주의 창조자가 나옵니다. 저는 그것을 경험에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닙니다. 세상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당신은 지옥을 경험했을 수도 있고, 아마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그 검색은 결국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며, 당신이 찾고 있는 자아는 바로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는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쓰여 있지만, 정말로 기묘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말했습니다: "가서 그에게 말하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요, 새벽 별이다." (요한계시록 22:16) 저는 뿌리, 즉 기원, 아버지이지만, 동시에 다윗의 자손이기도 합니다. 저는 다윗의 아버지이자 다윗의 자손입니다. 이제 성경을 읽어 보세요. "나는 너의 몸에서 아들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2 Samuel 12)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나는 내 아버지와 하나이다." (요한복음 10:30) 그는 다윗에서 나오고, 그러므로 그는 다윗의 아들이며, 다윗은 우주 전체를 창조한 존재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우주를 창조한 존재는 그 안에 잠재해 있던 자신을 그 우주에서 끄집어냅니다.


여기서 할아버지와 손자는 하나이며, 우주를 창조한 신이 바로 인간성인 다윗을 통해 자신을 끄집어냅니다. 인간성은 다윗이고, 그로부터 자신을 끌어내는 존재가 바로 자신입니다. 그래서 "가서 그에게 말하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세상이 다윗을 보는 방식으로 다윗을 보면, 이 신비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윗이란 존재는 인류를 하나의 존재로 축소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 작은 아이를 보면, 그 아이는 바로 당신의 아들이지만, 그는 당신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인류 속에 자신을 묻고, 모든 역할을 다 해왔습니다. 결국, 당신은 스스로 창조한 것을 해방시키고, 그 창조를 구속합니다. 당신의 창조물은 단 한 명의 존재로 응축되어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그 존재는 바로 성경 속의 다윗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다." (요한복음 8:23) 그가 위에서 왔다는 말은, 그 안에서 위와 안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아래와 밖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위에서 온 자는 모든 것 위에 있고, 아래에서 온 자는 세상의 것들을 표현한다." (요한복음 3:31)

여기서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그가 가르친 가장 중요한 진리를 봅니다. 사실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개념에 대한 그의 계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건대, 바로 당신이 그 하나님입니다. 지금, 집세를 낼 수 없을 수도 있고, 장이 텅 비었을 수도 있고, 빚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바로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를 유지한 존재입니다.


당신이 발견하게 될 존재는 바로 우주를 창조한 존재이며, 그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시다." (신명기 6:4) 그래서 그에게 가장 큰 계명을 물었을 때, 그는 열 가지 계명 중 어느 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을 언급했습니다.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시다." (마가복음 12:29)

그 후, 두 번째 계명을 말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마태복음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9)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 전체 우주는 당신이 밖으로 밀어낸 자신입니다. 어느 날 당신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바로 당신이 밖으로 밀어낸 자신이었음을, 그리고 당신이 밖으로 밀어낸 것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킬 때만 그것이 변할 수 있음을. 그것은 스스로 변화할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 대해 가진 태도가 나와 당신 사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먼저 나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9) 그가 말하는 '그'는 바로 당신 안에 있는 'I am'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거나 나를 다르게 보길 원한다면, 내가 그를 사랑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바로 당신이 밖으로 밀어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면, 그 변화는 나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모든 외부 세계가 나의 변화에 맞춰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진리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는 "나는 진리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안에 진리가 충만히 거하는 중심이 있다면, 그 중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면, 그는 그 중심이 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부활하는 유일한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은 내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내 안에서 부활하여 껍질을 깨고 나오고, 그가 나올 때 나는 자유로워집니다. 나는 바람처럼 자유로워지고, 나는 점차적으로 내가 진정 누구인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매일 밤마다 나는 점점 더 내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그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묘지로 가서 그들을 묻은 친척을 빈곤하게 만들까요? 세상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들은 내 안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이 가는 곳은 나 외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나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도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심은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내 안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아침, 나는 64세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최근에 은퇴를 하고 멋진 은퇴 자금을 마련해 두었고, 캘리포니아 스탠다드 오일에서 인사부서를 담당한 분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날 아침, 그는 아내에게 "잠깐만 나에게 시간을 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물론이지"라고 대답했고, 그들은 그의 책상에 앉아 그가 해야 할 17가지 항목을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해했어?"라고 묻고, 아내는 "네, 이해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그가 두 번째 항목을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로, 아내는 "네, 이제 이해해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마지막 항목을 설명하고 나서 "이것도 이해했어?"라고 묻자, 아내는 "네, 확실히 이해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끝내고 나서 바로 그는 떠났습니다.

오늘 아침, 그는 내게 왔습니다. 정말 훌륭한 영혼이었고, 나는 그를 1947년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첫 번째 해는 1946년이었고, 매년 그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멋진 여행이었어. 너무 쉬웠어. 그냥 평범한 대화였어." 그의 이름은 알(Al) 올스트롬이었으며, 그는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그는 이 계시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 만남에 처음 몇 번 참석했지만, 그 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매주 일요일 아침, 옛 찬송가를 연주하며 울었습니다. 그게 그가 원하는 것이었고, 그에게는 그것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 계시를 들으려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그는 내 안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 외에는 그를 만날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나는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내 높은 차원에 있는 존재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고,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알이 내게 나타났고, 나는 그를 이렇게 만났습니다. 아주 잠깐만 그를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죠. 정말 놀랍게도, 그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는 기차역에서 나를 만났습니다. 카운터에 앉아서 간단한 간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보여준 것은 그가 나갔던 방식 그대로였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나와 함께 간단한 간식 또는 큰 간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물리적인 식사였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내가 알던 그 알(Al)과 동일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를 경험한 방식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부정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가졌고, 그는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Nearer My God to Thee"와 같은 오래된 찬송가들을 연주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저 멀리 우주 어딘가에 계셨습니다. 내가 그에게 내가 경험한 유일한 하나님, 즉 우리가 안에 품고 있는 하나님을 말했을 때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 누구도 그의 예수 그리스도를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은 그가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방식, 즉 그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그가 "나는 내 아버지에게 가고, 너희의 아버지에게 가며, 내 하나님에게 가고, 너희의 하나님에게 간다"고 말했을 때, 그리고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그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거부했습니다. 오늘날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여전히 그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우주에 있는 어떤 작은 신상들을 숭배하며, 그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런 개념들을 숭배합니다. 그들은 그들 안에서 나오는 계시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이고, 여러분이 바로 인류의 아버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이 놀라운 연극에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연극은 하나님이 모든 역할을 하시고, 그가 모든 역할을 마친 후, 자기 자신을 깨뜨리고,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그들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묘지로 가서 그들을 거기 묻은 친척을 가난하게 만들까요? 
그게 세상의 시각에서는 맞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아닙니다. 그들은 내 안으로 돌아옵니다. 그들이 돌아갈 곳은 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죽은 모든 이들은 나에게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나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하나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내 안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아침, 나는 내가 알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64세의 나이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은퇴했고, 아름다운 은퇴 자금을 마련해두었으며, 캘리포니아의 스탠다드 오일에서 인사부장으로 일했습니다. 그가 죽던 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깐만 나와 시간을 보내줄래?" 아내는 물론이라고 대답했고, 그들은 그의 책상에 앉아 17개의 항목을 하나씩 검토하며 "이것을 이해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17번째 항목을 다 끝내자마자, 그는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날 아침, 나는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여전히 그 사람이었습니다. 1946년 처음 만난 이래로 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나의 친구였습니다.

성경은 다른 아들이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을 교회 전통에 맞게 재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나는 전통이다. 나는 관습이다." 라는 말은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는 진리다. 나는 길이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부활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이런 강력한 "나는 ~이다"라는 말씀들은 있지만, "나는 전통이다, 나는 관습이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우리는 전통을 계속 이어가면서, 스스로를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지만, 우리의 성경은 여러 번 바뀌었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나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바꿔 놓은 것입니다.


이제 오늘 밤에 제가 여러분께 나누고 싶은 비전이 있습니다. 제 친구는 여기 없지만, 지난 강의에서 그 친구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카지노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 카지노에 있고, 카지노 주인이 그녀의 상금을 세기 위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카지노에서는 칩을 세겠지만, 이 카지노에서는 긴 프랑스 빵을 세고 있습니다. 이 빵은 끝까지 잘려 있지 않고, 길게 썰어졌지만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그 빵을 하나씩 가리키며, 그녀는 "$50"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주인은 "$50"이라고 반복하고, 그녀는 또 "$100"이라고 부릅니다. 주인은 계속해서 반복해야 했고, 점점 더 화가 나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녀는 그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에 특별한 흥분을 느끼며, 계속해서 상금을 받았습니다. 결국 마지막 빵 조각이 끝났을 때, 그녀는 "150"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150"이라고 말하며, 빵이 모두 피처럼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빵이 피처럼 변하면서도 여전히 빵이었고, 그 숫자 150은 성경에서 말하는 완전한 숫자, 즉 영적인 완전성을 나타냅니다.

성경의 요한복음 6장에서 말하는 "이것이 내 몸이니라. 내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다."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생명은 바로 피에 있습니다. 그녀는 이 상징을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그녀의 놀라운 인간 상상력으로 완전히 받아들인 것을 나타냅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아무도 탓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를 탓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녀 자신임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삶의 현상을 일으킨 원인임을 완전히 받아들일 때, 그녀는 빵을 먹고 피를 마신 것이 됩니다. 그때 모든 것이 혈육처럼 흐르기 시작합니다. "내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는 말씀이 바로 이 뜻입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에 받았던 편지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한 분은 자신이 큰 그릇과 같은 곳에서 어떤 사람이 긴 머리의 지휘자로부터 지휘봉을 받은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공연이 다시 있을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그 장소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또 그 긴 머리의 지휘자와 같은 공연을 보았습니다.

그 지휘자는 정확한 지시를 내리며, 마치 무언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 공연의 음악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고, 그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공연을 통해 그는 자신이 왜 그곳에 있었는지, 왜 그 공연을 보아야 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공연이 단순한 예술적 표현이 아니라, 그가 겪어온 삶의 한 부분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 그는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하나의 큰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모든 순간이 그가 이곳에 오기 위해 준비된 순간이었듯이, 그 모든 경험은 하나의 큰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그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었습니다.

그의 깨달음은 그가 처음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풍성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으며, 자신이 경험한 것과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진정으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더 이상 두려움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한 여자가 말했습니다.
“저 하늘에 있는 저건 뭐죠?”
그는 쌍안경을 들고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그것이 비행기인지 아닌지 궁금했죠. 그리고 그것은 다채로운 색을 가진 새였는데, 앵무새처럼 보였고,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새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나가세요,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새는 내려와서 그의 얼굴을 날개로 쳤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단순한 꿈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꿈이 아닙니다. 이것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멋지게 예고하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채로운 색을 가진 앵무새가 아니라 비둘기가 될 것입니다.
비둘기는 사람을 피합니다. 저는 그걸 경험으로 압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이 수준에서 내는 악취가 너무 심해서 비둘기가 사람을 피하는 것이죠. 그리고 비전에서 그 여자는 사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것이 남자가 아닌 여자가 꿈에서 자신에게 물어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녀는 그가 말한 대로, 비둘기는 남자를 피하지만, 그가 당신을 사랑해서 그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것을 뚫고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겪을 멋진 예고입니다.
다른 한 여자는 제가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 제가 죽는 꿈을 본 분들이 많습니다. 이걸 말씀드리면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건강한 상태입니다.
그녀는 제가 죽어 있는 상태를 봤습니다. 아무리 그녀가 노력해도 저를 다시 살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제가 죽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저를 너무 사랑해서 다시 살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 여자는 내가 만약 죽지 않도록 막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알았기에 아무도 저를 만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결국 바닥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정말 멋진 비전입니다. 그 비전이 없었다면 여러분은 '죽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너는 살 수 없고, 내가 죽어야만 너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너는 나를 위해 죽지 않겠다고?”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죽지 않으셨다면,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은 제가 꿈에서 깨어났고, 저는 위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태어난 유일한 존재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녀는 그걸 멋지게 보았습니다. 그녀가 본 비전은 정말 완벽했습니다. 그녀는 그 비전에서 완벽하게 상징적인 의미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네빌, 나는 이걸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그가 얼굴이 점점 더 보라색이 되어가면서 내가 말하는 숫자를 반복해야 할 때 정말 즐거웠어요.”
마지막에 그녀는 숫자 '150'을 말했고, 그는 그것을 반복했습니다.
그 전체 빵 덩어리가 피로 변했어요. 그 빵은 피로 변하면서도 여전히 빵처럼 보였고,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내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너희가 살 수 있다." 이 성경의 말씀이 바로 이 비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지난 주 월요일에 보내주신 편지들이 정말 멋졌습니다. 여러분이 경험한 것들이 하나같이 놀랍고 아름답습니다. 한 분은 자신이 어떤 장소에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긴 머리의 지휘자가 있었고, 그 공연은 다시 반복될 것임을 직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연이 다시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곳에 갔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대로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은 그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아무도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지만 나는 당신을 압니다, 오 주님." (요한복음 5:37)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어요. "너희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지만 나는 당신을 압니다, 오 주님. 세상은 당신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당신을 알아요." 이제 그는 몇몇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몇 명만이 정말로 그의 이야기를 믿고 있다는 걸 알아냈고, 그들은 이 이야기를 퍼뜨릴 것입니다. 처음에는 남의 이야기로 듣게 될 것이지만, 결국 그들은 그것을 직접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말한 진리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외부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의 말을 듣지 마세요. 그에게서 관심을 돌리세요. 외부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당신은 이 멋진 외부 세계를 보고 있지만, 실제로 외부에 하나님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지탱하는 존재는 바로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가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죠. 세상에서는 이것을 신성모독이라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이 어떤 이름을 붙이든 저는 이게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당신 안에 갇힌 빛이 나오게 되고, 당신의 기억이 돌아오며, 이전에 알았던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란 것은, 이 세상에 내려오고 육체의 제한을 짊어짐으로써, 이제 당신은 세상에 내려오기 전보다 더 크게 확장될 것입니다.

그는 "아무도 내 생명을 빼앗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내 생명을 내놓고, 다시 그것을 취할 능력이 있다."(요한복음 10: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내려오셨고, 왜냐하면 외부에는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가 되기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하나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존재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로힘(Elohim)은 복수형입니다. 성경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엘로힘'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시니라"는 말에서 '하나님'은 엘로힘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는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며 엘로힘이 등장합니다. 또한, 창세기 3장 22절에서 "그가 이르시되, 보라, 사람이 우리의 하나처럼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함께 모여 하나의 하나님을 형성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의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세상 밖에서 새로운 행성이나 새로운 에너지를 찾는 것에 대한 노력은 모두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즐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만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진리입니다. 성경에서 사회를 바꾸려는 시도는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아요. "가이사에게 가이사의 것을 주라" (누가복음 20:25)라고 말씀하시죠. 그는 감옥에 있는 사람을, 노예를, 자유롭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그대로 두세요.

오늘날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에너지를 쏟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보건복지부에서 알림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 건강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제 가족을 위해 블루크로스를 통해 건강 보험을 받아왔는데, 정부가 대신 관리해주겠다는 내용이었죠. 그래서 건강 보험에 관한 문의를 위해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제가 건강에 관한 질문만 받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제 퇴직 연금에 관련된 질문들만 받았어요. 저는 "저는 퇴직하지 않아요. 저는 건강 보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러 온 거예요"라고 말했죠. 
그 직원은 "그것도 이곳의 일부입니다"라고 했고, 제가 예상한 건강 보험에 관한 질문을 받지 못했어요.

그녀는 제 보험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다른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제가 예상한 대로 우리가 모두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고, 그녀는 모든 자료를 이미 가지고 있었어요. 그녀는 저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저는 제 여권을 제시했어요. 제 여권만이 제 유일한 신분증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요. 왜냐하면 운전을 하지 않거든요. 저는 차도 없어요.

그런데 그녀는 "당신이 65세가 되는 2월에 대한 증거가 있나요?"라고 물었어요. 저는 "여권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죠. 그러자 그녀가 말했어요. "그것은 증거가 되지 않아요. 출생증명서가 있나요?" 저는 "제가 태어난 곳에서는 출생증명서가 없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해에는 그것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출생증명서가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세례를 받았고, 어디엔가 세례증명서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걸 찾을 수가 없네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어요: "찾아보세요, 아니면 그것을 우편으로 요청하세요. 우리는 당신이 정말로 65세가 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은 이미 다 알려져 있었어요. 저는 그곳에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제가 세금으로 낸 금액, 신고한 것과 신고하지 않은 것, 모든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무도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정부는 이미 모든 정보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숫자일 뿐이죠.

하지만 당신은 그게 아니에요. 당신은 이 광활한 세상을 창조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당신을 두렵게 하지 마세요. 그 직원은 매우 친절하고, 정말로 훌륭한 분이었어요. 그녀는 제게 정말로 친절하고, 내내 달콤하게 대했어요. 그녀는 마치 제 여동생 같았죠. 그렇지만 그들은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만약 저처럼 찾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지 마세요. 왜냐하면 당신 안에 있는 이 존재가 바로 유일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은 당신 안에 존재하며, 당신은 그 존재를 이 수준에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아직 육체가 부서지지 않았지만, 상상만으로도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태를 상상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마세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행동하세요. 그리고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창조했어요. 우리는 그것을 잊었지만, 제가 지금 당신에게 그것을 상기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상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은 단순히 상상을 통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상상 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 이제 시작해 보세요. 오늘 밤부터 멋진 상상을 해보세요. 그 어떤 것도 아닌,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것을 상상하세요. 그리고 그것이 당신에게 사실이라고 믿으세요.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해보세요. 가까운 사람들부터 시작하세요. 물론 지금은 그들이 하는 일을 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 상상을 지속하세요. 마치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지속하세요. 그러면 그것은 사실이 되어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다른 창조적인 힘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창조적인 힘이 없다면, 당신이 그것을 믿는 한, 그것을 멈출 수 있는 다른 힘은 없습니다.


지금부터 그걸 시도해 보세요. 가장 훌륭한 상상을 하세요.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상상하세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시작하세요. 그리고 그들이 지금은 그것을 부정할 수 있지만, 그 상상을 지속하세요. 그러면 그것이 사실로 굳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다른 창조적인 힘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이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봐도, 그들이 하나님을 찾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들은 세계의 모든 실험실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어요. 그들이 그 작은 조각들을 뜯어내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는 있지만, 그들은 아버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그들 안에 존재하며,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밖에서가 아니라 그들 안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아버지는 다윗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다윗을 통해서만 아버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다윗의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의 끝으로 돌아가 보세요.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다." 뿌리는 원천, 즉 아버지를 의미하고, 자손은 그 아들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나는 둘 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뿌리와 자손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누구인가요? 예수님은 "나는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다윗은 무엇인가요? 다윗은 하나의 존재이자 인류입니다. 다윗은 인류 전체를 대표하며, 그 인류는 하나로 결합하여 영원한 젊음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책에서 읽은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경험했고, 
그래서 제가 경험한 것을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론을 펼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전체가 반대하더라도 그것은 저에게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저는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에게 말했던 것처럼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당신의 말을 듣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는 당신이 판단하세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본 것과 들은 것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4:19) 저는 제가 경험한 것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윗의 아버지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녀는 제게 모든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65세가 되는 게 맞나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저는 제 여권을 보여주었습니다. 제 여권이 제 유일한 신분증입니다. 저는 운전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 면허증이 없고, 자동차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말하길, "여권은 증명서가 될 수 없습니다. 출생증명서가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어요, "저는 태어난 곳에서는 출생증명서를 발급하지 않았습니다. 
제 출생 당시에는 그것이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세례를 받았고, 세례증명서가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말하길, "그럼 그것을 찾아서 제출하거나 요청하세요. 당신이 65세가 되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이미 그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지 않아도 되었어요. 
그들은 제가 세금으로 낸 모든 금액을 알고 있었고, 제가 신고한 것과 신고하지 않은 것까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실제로 아무도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방대한 세상을 창조한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녀는 정말 친절한 분이었고, 매우 친절했습니다. 그녀는 마치 제 여동생처럼 상냥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그녀와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안에 있는 유일한 신이 바로 그 질문을 던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을 창조한 신은 바로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것을 이 세상에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아직 깨지지 않았고, 출생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단지 어떤 상태를 상상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진짜라고 믿고, 그것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확신하세요. 그렇게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오기 전에 모든 것은 상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처음에는 상상으로 존재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상상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여러분의 세상에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되고 싶은 남자, 여자라면 그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상상을 진짜인 것처럼 계속 유지하세요. 그러면 세상에 그 누구도 그것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막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막을 수 없어요. 그렇게 상상하고 믿으세요.

오늘 밤부터 시작하세요. 아무리 작은 것도, 꼭 최고의 것만을 상상하세요.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과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짜라고 상상하세요. 여러분의 가까운 사람들부터 시작하세요. 그들이 지금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모습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상상을 계속 유지하세요. 그리고 그것이 현실로 변할 것이라고 믿으세요. 그 무엇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상상은 현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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