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어가는 여정: 우리의 내면에서 펼쳐지는 신의 신비
언더우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서 상상력은 현실을 형성합니다. 네빌 고다드의 책과 강의 속 깊은 가르침들을 제공하는 채널입니다. 오늘은 그의 강의 "I am in you"를 들려드립니다. 편안히 앉아, 휴식을 취하시며 함께 변형과 창조의 비밀을 풀어보세요.
오늘 밤의 제목은 "I am in you"입니다. 먼저 기억하세요. 우리는 신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했듯이, "위대한 신비는 확실히 고백됩니다." 이 신비는 우리의 신비입니다. 세속적인 역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밤 우리는 그 신비를 탐구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는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그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그날"이라는 표현은 '여정의 끝' 또는 '이 세상의 끝'을 의미하는 종말론적 용어입니다. 그날이 오면, 너희는 나를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으며, 나는 너희 안에 있다."
우리에게 신의 본성이 드러나는 곳은 바로 '우리 안'입니다. 신의 본성은 초자연적인 경험 속에서, 1인칭 단수 현재형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경험되면, 모든 논쟁이 잠잠해집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이를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그것은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듯이,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내 안에 나타내셨을 때, 나는 육체와 피와 상담하지 않았다." (갈라디아서 1:16)
이 질문이 던져졌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과연 한때 사람으로 존재했습니까?" 내 대답은 바울의 대답과 같았습니다. "그는 하늘의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5:49) 예수님은 천상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지금 신비를 다루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어떤 작은 소년이 태어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실제로 사람이 되어,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우주적인 원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부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활이 끝났다고 가르치는 이들은 신자를 잘못 인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 (갈라디아서 2:20)
이 신비는 단순한 육체적인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몸, 하나의 영, 하나의 주, 하나의 하나님과 아버지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사람이지만, 우리 안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결론: 이 신비는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펼쳐집니다.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이다. 결국, 신의 본성은 우리가 바로 그 존재 안에서 경험하며 드러납니다.
그가 나일 때, 그가 나 안에서 펼쳐지기 시작할 때 나는 그것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신의 본성은 우리 각자 안에서 나타난다. 나는 사람이고 너도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끝에서, 바로 마지막에 일어난다. 그 마지막은 너에게 갑자기 찾아온다. 밤중에 도둑처럼 네게 올 것이다. 너는 그것이 오늘 밤이 될 것이라고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오늘 밤일 수 있다. 그리고 갑자기 너 안에서 폭발한다. 그때 전체 이야기가 너에게 펼쳐진다. 그것은 주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1인칭으로, 바로 너의 이야기로 경험된다.
너는 형제, 자매, 부모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들이 아직 여기 있다면, 너는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너를 알고 있다. 그들은 전혀 다른 것을 기대한다. 그들은 네가 얼마나 약하고, 제한적이며, 교육을 받지 않았는지를 안다. 그들은 성경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말을 듣지 못하고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이 사람이 이렇게 배우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요한복음 7장에서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그는 랍비들을 놀라게 했고, 산헤드린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어떻게 학문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오늘 성경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왔다. 그는 성경을 이루기 위해 왔다. 이루어진 성경은 구약이었다. 그것이 유일한 성경이었고,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오심을 예고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인간으로 오셨고,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으며, 우리의 본성 안에서 그분의 본성을 펼치셨다. 우리는 하나님이다. 만약 그가 우리를 선택하시기 전, 아버지였다고 한다면, 그가 우리에게 자신을 주셨다면, 우리는 아버지가 된다. 아무도 그가 아버지임을 증명할 수 없다. 그가 아버지임을 증명하려면, 아들이 있어야 한다. 아들이 그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모두 펼쳐진다. 그래서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말할 때, 그 말은 그리스도의 말이다.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이다. 그는 너희에게 내가 너희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으며, 우리는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이 말들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말이다. 그리고 그는 한 번도 나를 안고 나서 나를 떠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보냈다. 이것이 바로 그 신비이다. 어떻게 내가 하나의 몸과 하나가 되면서도 보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의 말은 이렇게 되어 있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본다." 그는 나를 떠난 적이 없다. 어떻게 그는 나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하나일 수 있는가?
우리는 삼차원적인 공간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떠나면, 나를 보낸 이가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다른 그림이다. 오늘 밤, 이 존재에 대해 숙고하라. 그 존재는 실제로 너가 되어가고 있다. 그는 너를 선택했으며, 그 선택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그의 계획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충만한 때를 위한 계획이었다. 그 충만한 때는 바로 그 날, 그 날이 올 때 너는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인간 안에 계획이 있다. 그 계획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계획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 말씀은 의미였고, 그 의미는 계획이었다. 하나님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의미는 너 안에 있다. 그것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든, 계획이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 목적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목적은 단순히 너 안에서 하나님으로서 펼쳐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는 이 땅을 걸으며, 이 말씀이 충만해지도록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상상력이 현실을 창조하는 세상에서 허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8년 전, 작은 아들과 함께 놀면서 그녀는 그에게 "이건 소망의 책이야"라고 말하며 그의 큰 책을 옆에 두었습니다. 그 후 이웃에 있는 모든 소년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르기 시작했고, 해마다 책이 하나씩 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소망의 책"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실제로 그것의 표지에 인쇄된 것이 있습니다. 멋진 표지의 시어스의 소망의 책, 그들의 크리스마스 카탈로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세상에서 어떤 것이 지연되고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를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오늘 밤 일어나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고, 우리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국가들은 계획을 세웁니다. 만약 계획을 세운다면, 그것은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위한 것입니다. 부모들은 성장하고 큰 재산을 갖게 되면, 그들은 단지 지금 여기 있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의 자식들, 즉 후손들을 위해 계획을 세웁니다. 그들은 미래를 계획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나는 초조해하고 "지금 당장"을 원합니다. 그렇죠, 여러분은 지금 결혼하고 싶나요? 그렇다면 아직 이혼하지 않았죠? 그렇지만 나는 지금 원합니다. 오늘 밤요! 그러나 그녀는 아직 이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그래서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 남자 아니면 안 돼요." 나는 결혼식에서 그들이 걸어가면서 웃으며 지나가는 걸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 남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행복한 결혼이었고, 그들은 그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 남자여야 한다"라고요. 나는 그에게 "그가 지금 죽어도, 그래도 결혼하고 싶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왜 그 질문을 하세요?" 그는 말했습니다. "단순한 질문입니다. 그가 지금 죽어도, 그래도 결혼하고 싶습니까?" "아마 그렇겠죠." "그렇다면 그가 유일한 남자일 수는 없습니다. 그가 죽어도, 당신은 여전히 결혼하고 싶다면, 그는 유일한 남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인생에서 진정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세요.
그것이 어떤 특정한 남자나 특정한 상황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세요. 그냥 "행복하게 결혼하고 싶다"라고 말하세요. 원하는 집이 있다면, "원하는 집이 있다"라고 말하세요. 그러나 "그걸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닙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지금 그 소망을 가진 채로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처럼 느껴본 적 있나요?"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세상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그러고 나서 그 느낌에 빠져보세요. 현실처럼 모든 감정을 담아보세요. 이것이 우리가 진정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바로 그 신이 여러분 안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작은 신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작은 신들과 함께 뛰어다니는 그런 존재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신만이 존재합니다. 그 신의 근본적인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가 하나일 때, 우리가 하나일 때, 그 신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언젠가 그 신으로서 깨어날 것입니다. 그 신은 이 인간이라는 존재 안에서 깨어납니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존재가 그런 책임을 짊어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런 연약한 존재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신의 목적이 이미 펼쳐졌음을 알 수 있을까요?
그 사실을 이 세상에서 누구에게도 보여줄 방법이 없을까요? 오직 말을 통해서만 그것을 전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확신시킬 수 없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임을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나는 가능한 한 잘 설명하려고 했고, 그것을 뒷받침할 성경의 구절들을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성경을 이루기 위해 왔기 때문입니다. 내 경우에는 그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전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여서 내가 말한 대로 그것을 드라마로 만들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난 금요일 밤에 말한 것처럼 그것을 드라마 형태로 표현해보세요. 이오네스코와 그의 멋진 연극에 대해 이야기해보세요.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이 이야기는 그들의 것보다 훨씬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일어난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일어난 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여동생은 원했던 대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는 "위대한 이야기"를 보러 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아주 간단한 남자가 이 땅을 걸으면서, 그 안에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상치 않게 그 안에서 펼쳐집니다. 그는 가장 놀란 사람입니다.
그는 한 순간도 자신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은 공로를 쌓아야 얻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공로도 쌓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만약 자신이 50년이나 60년을 되돌아본다면 자랑스러워 할 일이 하나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가 하지 않았던 일들을 자랑스러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약한 몸 안에서 하나님은 완벽하게 펼쳐졌고, 성경에서 말한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말씀이 그 안에서 펼쳐졌습니다. 제가 말하는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충격적일 수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나는 한 마디도 쉽게 만들기 위해서 말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불편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곧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려워하지 마세요. 죽음은 축복이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어떤 의심을 가지고 있다면, 죽음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주장했던 많은 생각들을 수정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 나는 내 동료이자 동양의 의사였던 친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내 아내가 임신했을 때 치료해줬고, 내가 도움이 필요했을 때 내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동부에 있는 나의 가족 모두를 돌보았습니다. 오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그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52년도에 내가 큰 수술을 받았을 때, Randy는 내 의사였습니다. 그는 외과의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병실에 와서 매일 아침마다 방문해 주었습니다. 나는 항상 성경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위대한 책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방에 들어왔을 때, 나에게 앉아서 그가 매일 하던 것처럼 말을 했습니다. "Neville, 성경을 읽습니까?" "네, 매일 읽습니다." "몇 시간씩?" "매일 몇 시간씩입니다."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그럼 성경에서 무엇을 얻습니까?" 나는 그에게 "그것을 가르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가르칩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내가 성경에 대해 학문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고, 신학 훈련을 받았다고 예상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 비전이 있기 전까지는 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법칙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성경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법칙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Esau와 Jacob의 이야기"부터 시작했습니다. Esau는 내 외부 세계를 나타냅니다. 나는 그 외부를 잠시 닫고, Jacob은 내 내면 세계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외부 현실로 옮기고 싶습니다. 외부를 닫고 내면을 가져와서, Esau의 가죽으로 그것을 옷 입히고 내가 한 일의 현실을 믿습니다. 그때 나의 Jacob이 되면,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고 속고 있습니다. 나는 내면의 상태가 객관적 현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Randy는 이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짧은 방문을 마친 후 급히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에게는 종교의 일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일요일마다 아내와 두 딸과 함께 교회에 가서 1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예전에는 지팡이를 들고 다녀야 했던 시절처럼, 교회에 가는 것으로 한 주를 마무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를 하루 종일 생각했습니다.
그가 몇 주 전에 세상을 떠났고, 이제 그는 그가 믿었던 것들을 수정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정말로 위대한 일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았다고 해서 그곳에서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도둑이었다면, 그곳에서도 여전히 도둑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도둑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그곳에서도 똑같습니다.
같은 본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도둑이 아닌 사람 앞에 모든 세상의 재물을 둔다고 해도, 그 사람은 절대로 유혹되지 않습니다. 만약 사람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술을 그 앞에 두어도, 그 사람은 전혀 마시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유혹이 아닙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시 태어났다면, 그는 더 이상 세속적인 욕망의 세계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옷을 벗고 그를 완전히 노출시킨다고 해도, 그는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유혹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의 에너지는 이제 세속적인 욕망이 아니라, 재생의 세계로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그 사람은 그저 노력 없이 그것을 극복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들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그냥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변합니다. 그 변화는 미리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결과입니다. 하늘나라의 조건이 아니라, 그것이 당신 안에서 일어나면, 그것은 결과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공로를 쌓아서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전혀 공로를 쌓지 않았습니다. 이제 침묵 속으로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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